창립무렵의 선경직물
최종건 창업회장은 한국전쟁 중 폐허가 된 선경직물 건물을 복구해 재건하기로 결심, 건물 복구와 흩어진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하였습니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한국전쟁 중 폐허가 된 선경직물 건물을 복구해 재건하기로 결심, 건물 복구와 흩어진 부속품을 모아 직기를 재조립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선경직물을 창업, SK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선경직물은 해외통상을 인수한 후, 상호를 해외섬유로 변경, 완제품을 생산해 수직계열화 완성이라는 원대한 구상의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해외섬유는 선경직물이 인수한 첫 번째 기업입니다.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선경합섬을 설립, 공장을 가동하여 원사 생산이라는 오랜 꿈을 이루었습니다.
인재양성을 위해 선경이 후원한 MBC장학퀴즈는 1973년 2월 18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영되고 있습니다.
당시 최종현 선경직물 사장은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의 사장으로 취임하고 선경직물 회장으로 취임하며 최종현 선대회장 체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아카데미 설립을 평생 꿈으로 삼아오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의 목표는 고등교육 증진에 기여할 우수한 학자를 양성해 학문 발전과 국가 및 사회 발전에 공헌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수출하기 위해 폴리에스터 원면을 선적하고 있습니다. 선경은 1976년 수출액 1억 1,335만 달러, 당기순이익 65만 4,000달러의 실적을 올렸습니다.
선경화학(현 SKC)은 국내 최초로 폴리에스터 필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SK 고유의 경영관리 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를 정립·제정함으로써 SK의 경영근간을 마련했습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상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선대회장은 사우디와의 돈독한 관계를 바탕으로 1973년 1차 석유파동 당시 사우디로부터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전량 공급을 이끌어냈고, 1978년 12월 2차 석유파동이 발발했을 때도 사우디로 직접 날아가 원유 공급 약속을 받아옴으로써 어떤 기업도 해결하지 못한 국가적 위기를 타개했습니다. 두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으며 입증한 독보적인 원유 도입 능력을 바탕으로 선경은 1980년 결국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에 성공합니다.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이 개발에 참여한 예멘의 마리브 유전에서 국내 최초로 원유 생산에 성공했습니다.
울산CLX 내에 9개의 신규 공장을 준공,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습니다.
선경인더스트리는 의약사업 진출을 결정하고 생명과학연구소를 발족함으로써 의약사업 진출을 본격화했습니다.
1991년 국내 기업 최초로 중국에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이는 1992년 정식으로 한중 수교를 맺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선경은 1984년 미주경영기획실 내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면서 정보통신 사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989년에는 이를 더욱 본격화해 미국 현지법인 유크로닉스사를 설립하고, 1990년 미국 IT 업체 CSC사와 합작으로 선경정보시스템을 설립했습니다. 10년간의 준비 끝에 선경은 1994년 한국이동통신 주식 공개입찰에 참여, 주식의 약 23%를 시가보다 높은 가격인 주당 33만 5000원에 인수했습니다. 오랜 준비에서 비롯된 자신감과 향후 성장성에 대한 안목이 만든 최종현 선대회장의 결단이었습니다.
대전시 대덕구에 위치한 대덕기술원은 1993년 8월 1차 준공 후, 1993년 12월 연구·지원시설 준공으로 대덕연구소에서 대덕기술원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1995년 5월 25일 최종 준공됐습니다.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은 세계 최초로 CDMA 이동전화 상용 서비스에 성공, 세계 CDMA 리더로 부상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기업 CI 교체 작업을 완료, SK로 거듭났습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타계한 후 SUPEX추구협의회에서는 차기 회장 추대에 대해 논의하였고, 그 결과 최태원 회장이 SK주식회사 대표이사에 선임 되었습니다.
SK는 1999년 12월 6일 중국 베이징 CEO세미나를 개최해 ‘또 하나의 중국기업 SK’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행복 극대화’를 뉴 SK 기업이념으로 천명한 SK는 그룹 차원의 SK자원봉사단을 발족해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SK의 경영이념과 글로벌 기업 도약 의지를 형상화한 ‘행복날개’를 새로운 CI로 도입했습니다.
SK는 2006년 11월 14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행복을 나누는 도시락센터를 관리운영하는 행복나눔재단을 개소했습니다. 개소식 이후, 행복나눔재단은 행복도시락 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과 일자리 창출 사업을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선진화된 경영 시스템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경영 효율성과 재무 건전성을 높였습니다.
1979년 최초로 정립된 이래 SKMS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해왔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경영철학과 통일된 의사결정 기준 마련을 목표로 첫선을 보인 SKMS가 정립 30주년을 맞았습니다.
SK가 중국 내 추진하던 개별 사업을 그룹 차원으로 통합, SK China가 공식 출범 했습니다.
SK에너지가 SK이노베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물적분할을 통해 각각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2009년)를 설립, 사업별 경쟁력 강화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SK가 하이닉스를 가족으로 맞아 에너지·화학과 ICT에 이어 ‘반도체’라는 제3의 성장축을 구축했습니다.
각 사 이사회 중심의 자율책임경영(‘따로’)과 그룹 차원의 최고 협의기구인 SUPEX추구협의회의 자율적 참여(‘또 같이’)를 통해 안정과 성장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SK는 2008년에 아시아 기업 최초로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중국 최대 에너지 기업인 SINOPEC이 추진하는 대규모 에틸렌 생산공장 합작사업에 참여해 2013년에 '중한석화'를 준공하고 상업화에 돌입했습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이 창립 40주년을 맞았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도 안 되던 시절, ‘세계 1등 국가가 되기 위해선 세계 수준의 학자들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故 최종현 회장의 확고한 의지로 설립된 교육·연구 지원의 비영리 공익재단입니다.
SK주식회사와 SK C&C가 2015년 8월 합병을 통해 통합 지주회사로 거듭났습니다.
SK머티리얼즈 인수를 통해 주요 신성장 동력 중 하나인 반도체소재 사업 분야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룹의 혁신 의지를 담아 기업문화의 근간인 SKMS를 개정했습니다.
반도체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SK실트론 인수를 통해 SK머티리얼즈, SK에어가스, SK트리켐, SK쇼와덴코와 함께 종합 반도체소재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반도체 수직계열화를 완성했습니다.
SK하이닉스가 '낸드플래시의 원조'로 불리는 도시바(東芝)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을 인수하는 컨소시엄에 포함되면서 향후 기대 효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물리보안전문기업 ADT캡스 인수를 완료하고 보안 사업 영역의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세계 최고의 기술 경쟁력을 쏟아부은 M15을 준공하여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SK주식회사는 국내 최초로 미국 의약품 생산기업 앰팩(AMPAC)을 인수하여 비즈니스 모델 혁신의 초석을 다졌습니다.